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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개 > 지명유래

유곡면 신촌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661
등록일
2003.08.07
읍면
유곡면
첨부

옛날 유곡면은 정실(정곡,定谷), 미요(未要), 능인(能仁)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신촌마을은 능인(니인)에 속했던 지역이다. 분계와 양지(신상곡), 상촌(구상곡), 오목(작은 외에목으로 구오목), 평촌(신오목), 장군당(신촌 남서쪽 골안), 매미껄(신촌)등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정곡과 유곡의 경계지점인 막실재를 넘어 첫 동네가 신촌이고 이 마을 앞에서 유곡 소재지와 궁류로 이어지는 세갈래 길이다. 이 동네에서 서쪽으로 십리가 더 되는 깊은 골안이 능인촌(니인촌)이다. 매미껄이란 말은 가장밑(아래쪽)에 있는 동네란 뜻이다. 그러니까 받침소리 니은(ㄴ)과 티읕(ㅌ) 이 탈락 또는 묵음이 된 채 매미로 발음하게 된 것이며 껄은 거리(길거리)의 준말이자 토박이말로 경음화현상의 예이니「가장밑거리」 즉 능인골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란 말임을 알 수 있는 지명이다. 동네 뒤는 뒷동산인데 앞산은 겅구지니, 겅구지먼데이라 부른다. 이 마른 풀이나 갈비 등 검불로 된 땔나무를 말하는 거부지기 또는 검부저기가 변음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을 동남쪽 골짜기를 장군댕이, 장군당으로 부르고 있는데 옛날에는 마을이 있었던 곳이고 광복직후에도 1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장군당에는 영험이 있는 당산나무와 조산이 있었고 그 밑에 수구대장군(水口大將軍) 건륭46년(乾隆 46年) 안국서(安國瑞)라 새겨진 큰돌비가 서 있다. 풍수지리설에 있는 수구장문(水口藏門) 즉 골짜기 물이 멀리 돌아서 흘러가 저 밑 하류가 보이지 않게된 땅의 형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수구막이 또는 수구대장군이라는 글을 장승에 써서 세우거나 돌에 새겨 세우는 풍습에 결국 피재(避災)와 발복(發福)의 염원과 함께 허한지기를 비보하는 민속신앙의 한가지라 할 것이다. 이곳 장군당 뒷재를 넘으면 구오목마을이고 거기서 다시 큰외에목재를 넘으면 용소마을로 이어지게 되는데 동네도 없어지고 잿길도 없어진 채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신촌동네옆에 섬안들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는 한여름 장마가 지면 낮은 지대에 물이 들어서 꼭 섬처럼 되는 지역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마을 뒤편 산밑에 살갈덤이란 큰바위 밑에 약물새미가 있는데 이 물은 신기한 약수로 소문이 나 있으며 석달만 마시고 몸을 씻으면 오래된 마목도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살강덤은 바위의 모양이 부엌에 있는 살강(시렁을 말함)처럼 생겼다해서 그렇게 부르며 이 바위밑에서 물이 나온다. 또 마을을 조금 지나 골안으로 가면 길옆 산언덕에 애기를 엎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바위는 할망구덤, 물동이를 이고 있는 여인 같은 각시덤, 그옆에 좀 우람해 보이는 것이 신랑덤이다. 이 덤의 옆쪽 산버덩은 애장터였다고 한다. 마을 앞산자락에 달성 서(徐)씨문중의 경암재(景 齋 또는 景 齋)와 윤(尹)씨문중의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신창 표(表)씨라고 하며 지금은 달성 서(徐)씨가 27가구로 가장 많고 박(朴)·윤(尹)·주(朱)·이(□)씨가 서너집이며 임(□)·전(田)·강(姜)씨가 두어집씩 모두 49가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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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유곡면 총무팀 
  • 연락처 055-570-4862
  • 최종수정일 2023-01-18